2000년, 시스코 코리아 첫 여성 엔지니어로 입사한 최지희 대표는 마케팅, 세일즈, 파트너 세일즈 등 시스코의 다양한 부서에서 활약한 끝에 올해 8월 시스코 코리아의 신임 대표가 되었습니다. 시스코에서 22년을 보내는 동안, 최지희 대표가 경험한 시스코는 어떤 곳인지, 후배들을 위한 조언은 무엇인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Q1. 22년 전 2000년에 시스코 코리아 첫 여성 시스템 엔지니어로 입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입사 초기에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어려운 점보다는 굉장히 운이 좋았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제가 사실은 이전 직장에서 둘째 아이를 가진 후 회사를 퇴직하고 출산했어요. 한 2년 정도 쉰 경단녀였는데 운 좋게 시스코의 엔지니어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는 했는데 그 이후가 힘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작업했던 기술과 시스코에서 필요한 기술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그 기술을 습득하는 게 정말 힘들었고 큰 노력이 필요했어요. 게다가 둘째가 그때 한두 살 정도, 첫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거든요. 둘 다 다른 의미에서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죠. 가정에선 아이를 챙겨야 하고, 회사에선 업무 파악을 해야 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입사 후 한 1년 정도는 너무 힘들던 기억이 나요. 그 때는 정말 고3 보다도 더 열심히 기술을 배웠고 치열하게 살았어요. 1년 정도 그렇게 살았더니 조금 안정을 찾았죠. 지금 돌이켜보면 22년 시스코 생활 중에 제일 힘들었지만 많이 배웠고, 어떻게 보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시기예요.
Q2. 말씀을 들어보니 일과 가정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2008년쯤, 저희 남편이 북경 법인으로 발령받아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3년간 기러기 가족으로 생활을 해야 했는데 아이들도 북경에서 공부하면 좋겠다고 결정했던 터라 두 아들과 남편이 북경으로 가기로 했죠. 가족이 모두 북경으로 가니까 저도 “회사를 그만두고 북경으로 같이 갈 것이냐.” 혹은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어요. 돌이켜 보면 22년 저의 시스코 생활의 커리어 중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죠. 그 때 회사의 많은 분들이 저에게 북경 정도면 왔다 갔다 하며 원격 근무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금요일에 북경으로 가서 아이들과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3년 정도 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상황을 허용하는 회사가 거의 없던 때였는데 시스코는 저에게 필요했던 유연한 업무 환경을 먼저 제시해준 거예요. 사실 그런 제안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회사를 그만두고 북경으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을 것 같아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회사가 저에게 제공한 유연한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을 감사하게 잘 활용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3. 대표님은 시스코의 WOC(Women of Cisco)과도 관련이 깊으시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WOC가 2005년쯤에 만들어졌는데요. 제가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변경했을 때쯤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여자 직원도 별로 없었고 여성 매니저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 환경에서 WOC는 여성들의 커리어, 사회 문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칵테일 만들기 같은 재미있는 액티비티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네트워킹 하는 등 다양한 세션들을 진행해요. Women of Cisco이지만 남성, 여성 구분 없이 사실 시스코 직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성 엔지니어로 입사해서 한 팀을 막 맡아서 피플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시기라 자연스럽게 WOC활동을 했고 그 이후에 이제 WOC 리더이죠, 시스코 부녀회장을 맡았습니다. (하하)
그 후 WOC 활동을 하면서 초기에 관련 교육도 많이 받았고 diversity inclusion 담당도 했어요. 이런 활동들을 통해 여성 리더십에 대한 존중도 많이 받고, 나아가 Women of IT와 같은 행사도 맡으며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주어졌죠. WOC에 대해선 여러모로 감사하게 생각하게 생각해요.
Q4. 시스코에서 22년간 업무 외적인 활동까지 애정을 가지고 해오신 것 같네요. 시스코의 어떤 매력이 대표님을 사로잡았나요?
제가 항상 꼽는 시스코의 장점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예전 제가 엔지니어로 지낼 때, 저희 사원증에 적힌 기업 슬로건 중에 하나로 ‘No Technology religion’이라는 문구가 있었어요. ‘기술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 기술을 마치 종교처럼 맹신하면 회사가 혁신할 수 없다’는 뜻인데요.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회사의 모든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도 시대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선도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눈이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이렇게 끊임없이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을 가진 회사들을 인수하고 인재를 영입하는 등 노력하기 때문에 직원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어도? (웃음)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저는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두 번째 장점은 직원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는 기업이라는 거예요. 사실 시스코는 한국에 있는 어떤 글로벌 회사보다도 세일즈에 대해 (여기에서 세일즈는 셀러뿐만 아니라 오피스 모두를 포함합니다) 인정해주고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기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Cisco Impact와 같이 직원들을 위한 포상 개념의 행사를 진행하는 몇 안되는 글로벌 회사이기도 한 거고요. 항상 본사와 이야기할 때도 느끼는 부분인데요. 시스코 본사는 우리 기술을 시장과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고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세일즈 뿐만 아니라 시스코 직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격려하고 축하해 주는 문화가 있다는 것도 굉장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가 객관적으로 본 시스코의 매력이라면, 개인적으로 느낀 매력도 있어요. 제가 회사 내에서 팀이나 역할을 계속 바꾸면서 좋은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사실 일반 대기업에 있었다면 저처럼 이렇게 원하는 대로 3~4년마다 역할과 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시스코는 바꾸고 싶다는 저의 요청도 들어줬을 뿐 아니라 저에게 일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해준 적도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회사는 저에게 기회를 제공해 줬고 저도 그 기회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기에 이렇게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접근 방법을 제시해 주거나 다른 일을 조금씩 할 수 있도록 도전 의식을 계속 일깨워 주고 있어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싶기 때문이죠.
Q5. 말씀하셨듯이 굉장히 다양한 부서에서 업무를 경험해 오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저는 사실 성향 자체가 어떤 일을 딱 맡았을 때 그 일을 제일 좋아하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맡았던 모든 일들이 각자 다른 면으로 기억에 남아요. 처음 입사했을 때는 제일 힘들기도 했고 엔지니어로서 초기에 혼자 기술을 공부하면서 고객들하고 논쟁도 해야 했던 시기였는데요. 그 시기를 치열하게 살면서 발전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엔지니어를 하면서 기술이 좋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고 팔리는 건 또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마케팅 팀으로 옮기게 되었는데요. 마케팅팀에서 시장을 분석하고, 경쟁사를 분석해보니 좋은 기술이 있더라도 그것을 구입하는 고객은 또 다른 방면의 고려사항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시기였어요. 또 마케팅팀에 있다 보니 이번에는 ”마케팅을 잘했는데 세일즈를 왜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세일즈 팀에 가서 그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웃음)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저는 모든 일이 다 인상 깊고 배울 게 많았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다 나에게 녹아 들어가서 지금 더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6. 시스코의 사내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앞서도 시스코의 매력이라고 꼽았듯, 시스코에는 글로벌하게 people conscious culture가 있고 임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해주는 회사에요. 본사 차원에서도 직원들의 웰빙에 집중하고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스코 직원은 Team Space라는 기능을 사용하는데요, 이 기능이 상당히 선진화된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요. 나의 매니저, 상사에게 내가 한 주동안 어떤 업무를 즐겁게 했는지, 또 어떤 업무로 힘들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일기장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의 역량이고 개개인이 어떤 것을 즐거워하고 어떤 거를 괴로워하느냐 이런 것들을 파악해 가며 역량을 최대로 끌어내야 회사가 더 성장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 한국 팀도 그러한 문화 속에서 즐겁게 일하며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야 회사의 생산성도 올라가고 성과도 좋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Q7.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계신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일단 COVID-19 기간에 중단되었던 직원들이 모두 모여서 네트워킹하는 Happy Hour 같은 시간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사내 동호회 활동도 재개해보고 싶고요. 또, 저는 기업의 CSR 활동(사회 공헌 활동)도 사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최근 몇 년 동안은 대면으로 할 수 없었잖아요. 직원들 간에도 친목을 도모하면서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기에 곧 다시 여러 활동들을 진행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매년 여름에는 시스코 코리아 패밀리 데이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이 행사도 계속 유지하고 싶고요. 예전에 많이 했던 직원 자녀 대상 행사도 재개해 볼 생각입니다. 2002년쯤에 저희 아이들이 kids at work이라고, 시스코 사무실로 직원 자녀들을 초대해서 시간을 보내는 행사였는데 그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Parents at work 같은 행사도 좋을 것 같고 시스코에 다닌다는 것에 대해 가족들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8. IT 업계에서 대표님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현직자들에게 커리어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희 아이도 이제 5년 차 직장인인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가 느껴지기도 해요. 제가 하는 얘기가 사실 젊은 분들에게는 수용하기 힘든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본인’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전 항상 “내가 너무 괴롭거나 즐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른 옵션을 생각해라”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이전 회사를 그만둘 때도 그랬거든요. 물론 둘째를 가져 몸이 힘든 상황이었기도 했지만 그 일을 더 이상 하기 싫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었어요.
본인이 계속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본인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하고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가령, 어떤 일을 내가 굉장히 잘하고 있는데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고 가정해 보면요. 지금 하는 일이 물론 편하고 익숙하겠죠. 하지만 제안이 들어온 다른 일을 해서 3~4년이 지났을 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도 모릅니다. 많은 분이 도전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제 경우에도 시스코 안에서 업무를 많이 바꿨잖아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새로운 일에 대해 100% 몰라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처음 적응 기간엔 공부도 해야 하고 힘들죠. 그런데 그것도 자주 하다 보니 면역력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이런 체력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아요. 시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거죠.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인생 주기를 살펴보면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올라가기도 하지만 처음엔 좀 느리다가 한순간에 큰 폭으로 점프해서 발전하는 순간이 있어요. 언젠가 폭발적으로 점프하는 순간이 오리라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임하다 보면 반드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을 올라가다 더이상 나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그 때는 떠날 때가 된 거예요. 그럴 때 꼭 새로운 시도를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주하는 시기가 길어지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저의 기준이고 새로운 시도를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면 그게 맞겠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본인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라는 거예요.
Q9. 성장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는 좋은 말씀이네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에게 시스코란?’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나에게 시스코란” 이라고 하기엔 제가 거의 시스코 시조새라서. (웃음)
2024년이 시스코코리아 30주년인데 제가 시스코를 22년 동안 다녔다는 게 정말 놀랍기만 해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대학교까지도 2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인데 말이죠. 제가 오랜 세월 동안 삼성동의 그루터기처럼 지냈던 것이 돌아보면 시스코는 정말 나의 터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서 저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시스코는 삶의 터전, 그리고 가족과 같은 존재입니다.